본문 바로가기
  • つゆき
수다

지원

by 라떼한잔주세요 2024. 10. 26.

이력서와 경력기술서,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고 몇 회사에 메일을 보냈다. 규모가 조금 있는 회사에 지원을 하고 있다. 사원수 150명 이상, 매출 100억 이상, 이름 있는 게임이 1개라도 있는 회사들. 그 회사들이 나를 뽑아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제 시작인 기분이다. 뭔가 첫 취업하는 느낌도 든다. 그러고 보니 첫 면접 봤을 때가 생각이 난다. 아는 사람 소개로 들어가게 된 회사인데 자율복장이라고 했지만 첫 면접이어서 정장을 입고 갔다. 입사는 그래도 거의 99% 보장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오전 11시에 면접을 봤고 대표는 꿈이 참 컸다. 북유럽에 인맥이 있는지 북유럽 기반의 동화들의 판권을 얻어 그것을 기반으로 아동용 교육 게임을 만들었다. 수학, 과학 등. 면접 때 대표는 말을 참 잘했고, 목표가 뚜렷했고, 가치관이 확고했다. 그래서 그런 마인드가 참 마음에 들었다. 면접을 보고 난 후 직원들과 다 같이(그래봤자 6명) 부대찌개를 먹으러 갔다. 흰 셔츠에 국물이 튈까 조심스레 먹었다.

다 먹고는 일을 하고 왔다(?). 급하게 마무리해야 할 작업이 있다 해서 좀 도와주고 왔고, 그날 일당을 따로 받았다. 아직 대학생이었고 시험기간이었기 때문에 출근은 2주 뒤부터 했다. 그러고 보니 첫 회사도 12월, 3번째 4번째 회사도 12월 입사다. 뭔가 우연 같지 않은 느낌.

첫 회사는 딱 7개월 일 했다. 창업에 꿈이 부풀어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대표랑 정말 안 맞았다. 일단 소리를 너무 많이 질렀다. 모든 것이 본인 말이 다 맞다는 듯 무조건 우기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자꾸 다른 일이 계속 생겼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VR게임을 만드는 것인데 자꾸 어딘가에서 이상한 일들을 물어와 다른 일을 시켰다. 그때는 그런 것들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물론 지금도 이해는 안 되지만 회사가 생존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퇴사를 하고 창업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젊은 피의 객기였달까, 내가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줄 알았고,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루에 18시간씩 일 해도 결국 우리만으론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게 되었다. 처절한, 처참한 실패였다. 빚만 생긴 무모한 도전. 그 빚은 그래도 다른 곳에서 일하며 5년 동안 착실하게 갚았다. 그리고 작년 여름에 다 갚아내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 바보 같았었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하는 방법도, 순서도 제대로 몰랐고 게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도 잘 몰랐으니까. 그래도 경험해 보니 달라진 점이 꽤 많아 후회하진 않는다. 늘 언제나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경험은 귀중한 것이고 어떤 경험이든 배울 것들은 있기 때문이다.

여러 회사들의 문을 두드리며 생각이 아주 많아졌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들도 참 많아진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냥 엔진만 다룰 수 있으면 프리패스 취업이었는데 어느새 다양한 기술들이 새로 많이 나오고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고민이 깊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회사들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그렇지만 난 해낼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잘 해낼 것이다.

나는 게임 개발자다. 내 인생을 구원해 준 게임. 이젠 내가 만들어 누군가를 구원할 것이다. 내가 느꼈던 만큼만 내가 만든 게임을 하는 사람이 느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