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일어났다. 옥상에 올라가 보니 눈이 다 녹아 있었다. 언제 눈이 왔었냐는 듯 잔뜩 쌓여있던 눈은 이제 물만 남기고 모조리 사라졌다.
씻고 준비하고 밖으로 나왔다. 모임 장소가 집 근처라 천천히 나왔다. 총 8명이서 점심부터 고깃집에 갔다. 딱히 고기가 먹고 싶지는 않았는데, 모임 방에서 누가 갑자기 고기를 먹자고 했고, 다들 그 의견에 찬성하는 분위기라 그렇게 정했다. 장소도 크게 멀지도 않았고. 무한리필 고깃집이었고 .. 맛은 없었고 .. 그런데도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맛있게 엄청 많이 먹었고 .. 이쯤 되면 내가 문제가 아닐까 싶다. 건장한 성인 남성 8명이서 무한리필집에 가면 어떻게 되는지 설명하는 영상에 쓰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정말 다들 엄청 잘 먹는구나란 생각을 많이 했다. 덩치가 작은 사람도, 큰 사람도 .. 나 빼곤 다 잘 먹었다. 거의 2시간을 꽉꽉 채워 먹었다. 고기를 다 먹고 디저트로 와플까지 구워 드시는 분들을 보며 조금 감탄을 했다. 먹으면서 이런저런 애니 얘기와 게임 얘기를 했는데, 다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 입덕 작품이 무엇인지, 최애캐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얘기를 주로 했다. 게다가 다들 목소리들이 참 커서 정말 다른 사람들이 보면 와 오타쿠 모임이다 ! 할 정도로. 뭐 딱히 상관은 없지만.
나와서는 보드게임 카페로 이동했다. 한 명은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먼저 가보겠다고 하고 갔는데. 뭔가 느낌상 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을 했는지 그냥 간 느낌이다. 먼저 간 그 사람은 05년생 .. 20살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30대였으며, 뭔가 코드가 잘 안 맞는 느낌이랄까. 밥을 먹으면서 그런 느낌을 조금 받았다. 그래서 7명이서 보드게임 카페로 갔다. 모임 운영진 중 한 분이 운영하시는지, 그냥 일을 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분이 자기가 일 하는 곳으로 오면 1시간에 2천원으로 해주겠다고 해서 거기로 갔다.
가서 그 분에게 룰 설명도 좀 듣고 보드게임을 총 5가지 정도 한 것 같은데, 이름이 다 기억나진 않는다. 중간에 홀덤도 조금 했다. 거의 4시간을 보드게임을 하고 나와 보드게임 카페 바로 아래 있는 준코 같은 노래술집에 갔다. 보드게임방을 나와서도 한 분이 먼저 갔다. 아무튼 6명이서 노래술집에 갔고, 기본요금은 180분에 4만원이었고 6명이라 메인 안주를 3개를 시켜야 한다고 했다. 딱히 다른 곳 갈 곳은 없어서 일단 들어갔는데 기본안주 가격이 다 3만원대였다. 어쩔 수 없이 대충 3개를 주문을 했다. 양이 정말 적게 나왔다. 이렇게 장사하면 돈 진짜 많이 벌겠다. 그런 기분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전부 다 노래를 잘했다. 오타쿠들은 원래 다 노래를 잘하나 ? 이런 느낌 ? 일본 애니 노래, 그냥 가요 이것저것 부르는데 정말 다 잘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뭔가 다들 체급이 기본적으로 있다 보니 성량이 풍부한 느낌도 있고. 그 와중에 뮤지컬 노래를 부르는 분도 계셔서 조금 신기했다.
나도 오타쿠이긴 하지만, 약간 이런 쪽 사람들을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게 마련인데 여기는 다들 본인 일에 충실하고, 적당히 소비하고, 적당히 즐길 줄 아는 건전한 ?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제에 뭘 판단을 하냐 라는 생각을 바로 이어했지만.
아무튼, 이렇게 큰 규모로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서 논 것은 처음이라 좀 낯설었는데, 다들 공감대가 어느 정도 있다 보니 크게 어색하지 않았고, 잘 놀다 왔다. 아마 모임을 종종 주최할 것 같다. 8명까진 아니더라도.
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