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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つゆき
수다

노트.

by 라떼한잔주세요 2025. 3. 17.

새로운 노트를 꺼내면 첫 글은 특별하게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같이 펜으로 종이에 직접 글을 남기지 않게 된 시대에는 조금 더.
어떠한 용도로, 어떠한 목적으로 사용하게 될 노트일지는 정하기 나름이지만,
그 노트에 이 글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여도. 뭐든 처음이란 늘 새롭고 설레는 일이니까.
오랜 습관 같은 일이다. 학창 시절 이후로는 노트를 쓸 일이 많지 않았고
노트를 쓴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채우는 일이 드물었다. 핸드폰이나 태블릿, PC에
저장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보기에도 편했으니. 게다가 글씨를 예쁘게 쓰지
못하는 나는 나중에 알아보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타이핑을 선호했다.
노트는 그저 코딩하다 막혔을 때나 구상을 할 때 끄적이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오늘 노트를 꺼낸 이유도 목요일에 있을 코딩 테스트 때문이지만 첫 장의 빈 공백을
보니 괜히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 노트를 썼다면
이 노트는 어떤 용도로 사용이 되었을까 ? 낙서장, 연습장, 메모장 등 몹시 다양한
용도로 쓰였겠지. 가끔은 사물에 감정을 이입해본다. 이 노트는 나에게 선택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차가운 매대에서 주인을 기다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저 그냥 누군가 얼른 집어가주기를 기다렸을까. 아니면 어떻게 쓰이고 싶다는 꿈이 있어
그렇게 써줄 사람을 기다렸을까. 물건들은 용도대로 쓰이는 것만으로 자기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할까.
뭔가 되게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노트는 나에게 선택받아 코딩 연습장이 될 운명이다. 그것으로 이 노트도 만족하면
좋겠다.